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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0-13 13:27
글쓴이 :
자연의숨결
 조회 : 2,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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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 살 되던 해 어느 날 새벽, 나는 울산역 부근 철길을 베고 누워 있었다. 사는 게 너무 고달파 죽고 싶었다.
그때 나는 공사판 막노동꾼이었다. 내 인생이 늘 밑바닥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엔 다복했다. 고향은 경북 포항이었고, 아버지는 구룡포 앞바다에서 미역을 채취했다. '미역바위'라고 불리던 바위섬이 우리 집 소유라 마을에서 제일 잘 살았다. 다들 배곯던 시절이지만, 나는 미역바위 덕분에 풍족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읍내 도장에서 권투를 배운 뒤론 더더욱 무서울 게 없었다. 나는 주먹도 세고 아버지도 셌다. 아버지는 자유당 지역위원장이었다.
1959년 2월 부산해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경남 진해에 가서 해병대에 부사관으로 자원입대했다. 베트남 전쟁에 자원해 1년2개월간 생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치열하게 싸웠다.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미역바위를 믿고 주먹을 휘두르는 혈기방장한 철부지가 아니었다.
전쟁은 내게 회의와 회한을 가르쳤다. 그리고 철선(鐵船) 한 척을 마련해줬다. 나는 중사로 전역한 뒤 고향으로 갔다. 군대에서 나온 돈과 고향에 있는 논 다섯 마지기를 판 돈을 합쳐 최신형 일제 야마하 디젤엔진이 장착된 철선을 구입했다. 동해를 종횡무진 오가며 다른 고깃배들이 울상이 될 만큼 고기를 많이 잡았다.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그 배가 침몰해 모든 걸 잃은 뒤였다.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삼륜차 짐칸에서 흔들리며 포항을 떠났다.
전 재산은 1만원이었고,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일자리가 많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울산을 택했지만, 막상 와보니 살기가 녹록지 않았다. 신문배달과 소방순경부터 방적회사 생산직과 공사판 막노동까지 도둑질 빼고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삶에 지칠 대로 지쳤을 때 나는 철길을 베고 누웠다. 멀리서 '끼익' 하는 기적 소리가 들렸다.
- ▲ 이금식 경암문화장학재단 이사장이 울산 한진종합건설 사옥에서 뒷마당에 쌓아둔 건축자재를 둘러보고 있다./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철길에서 멀지 않은 사글셋방에 아내와 아들 셋이 세상모르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내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벌떡 일어선 내 곁을 기차가 '쌩' 하니 스치고 지났다. 나는 목놓아 울었다. 기차 소리가 내 울음소리를 삼켰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와 아들 셋은 아직 자고 있었다. 나는 베개 밑에 두고 온 유서를 꺼내 태워버렸다. 나는 그때 다짐했다. "이제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니다. 죽을 마음도 먹었던 나다. 죽도록 열심히 살자."
매일 새벽 다섯시 반 인력시장에 나갔다. 살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내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렸다. 닥치는 대로 일해서 모은 종자돈으로 유리가게를 열었다. 이 사업이 번창해 연(年) 매출 100억원의 '한진종합건설'이 됐다. 이제 나는 67세다. 어른이 된 뒤 내 인생을 삼등분하면, 첫 3분의 1은 전쟁터의 병사와 밑바닥 막일꾼으로 험하게 살았다. 그다음 3분의 1은 열심히 일해 내 재산을 축적했다. 그다음 인생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했다. 지금껏 열심히 쌓았으니 이제부턴 나누며 사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갑을 넘긴 이듬해 6월, 나는 가족들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는 내 자식들이 도시락을 못 싸 소풍을 못 가게 만든 아버지였다. 그때 가슴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가족들은 흔쾌히 따랐다. 2006년 11월 나는 경암문화장학재단을 세웠다. 형편이 어려운 노인, 학비가 없는 학생 등 어렵게 사는 이웃을 찾아 지금까지 499명에게 8억3350만원을 지원했다. 이와 별도로 2009년 개인 돈 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해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때 "공부를 잘하면 좋지만, 공부에 목을 매지는 말라"고 말한다. "살아보니 옆 사람은 경쟁자가 아니라 길동무더라. 밟고 일어서려 하지 말고, 함께 잘 살려고 애써라. 남들 때문에 자기 꿈을 포기하지도 말고, 자기 꿈을 위해 남들을 밟지도 말아라."
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오면서 배운 게 있다면 회사도, 사업도, 인간도 이웃과 공존(共存)하지 않으면 공멸(共滅)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벌면 벌수록 고개가 숙여졌다. 인생을 바쳐 모은 돈을 자기 자신과 가족만 위해 쓰다 가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내가 가진 걸 멋지게 털고 가는 게 나의 '앙코르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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