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근로자로 일하다 루마니아 파견돼 추락사
"동생처럼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
우여곡절 끝에 받아낸 사망 보상금 2억여원 쾌척"다른 거 없습니다. 타지에서 외롭게 죽은 동생에게 형으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위로에요."
경남 거제시 계룡사 불당에는 향 냄새가 그윽했다. 지난달 6일 이곳에서 만난 서정운(46·조선소 직원)씨는 2009년 숨진 막냇동생의 영정을 어루만지다 눈가가 붉어졌다. 소주 냄새가 엷게 났다. "동생이 떠난 게 2년 전 추석 전날입니다. 이맘때면 동생 생각이 더 나서…. 절에 들르기 전에 술 한잔했습니다. 올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나, 자주 오지 않으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절로 향하게 됩니다."
- ▲ 고 서근원씨의 위패가 있는 경남 거제시 계룡사에서 형 서정운(46)씨가 동생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동생의 사망보험금 2억2720만원을 기부한 서씨는 “동생이 남기고 간 소중한 돈이 어려운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영정 속의 서근원(사망 당시 40세)씨는 아너소사이어티(고액 기부자들의 모임) 회원들 가운데 유일한 저세상 사람이다. 부자도 아니고 아내도 없었다. 그는
충북 제천의 시골마을에서 홀어머니 슬하에 자라 농고 졸업 후 거제도의 한 조선소에 기술직 근로자로 입사했다. 직장 동료들은 "맥주와 여행을 좋아하던 말 없는 사람, 회사 기숙사에서 공동으로 보는 위성TV 수신료를 아무 말 없이 자기 이름으로 꼬박꼬박 내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휴일이면 큰형 정운씨 집에 들러 조카들과 놀아줬고, 동네 꼬마들이 조르면 과자 한 봉지씩 사주는 좋은 아저씨였다.
그는 2008년
루마니아 망갈리아의 조선소 건설 현장에 파견됐다. 그해 연말 휴가를 받아 귀국해 큰형 정운씨와 거제도 계룡산에 올라 2009년 새해 첫 해돋이를 봤다. 형은 "건강하라"는 편지와 함께 마른오징어 한 묶음을 동생의 짐에 챙겨 넣었다. 그해 가을 추석 전날, 동생은 조선소 지붕 고치러 올라갔다 강풍에 떠밀려 26m 아래로 떨어졌다. '착한 근로자' ' 맘 좋은 아저씨'는 그렇게 세상과 결별했다.
보상금을 둘러싼 소송이 지난 7월까지 2년을 끌었다. 형 서씨는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 싸운 게 아니었다"고 했다. 서씨 형제들은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보상금 전액을 동생 이름으로 기부하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내가 굶어 죽는 상황이라 해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소중한 돈이죠. 다만, 동생의 죽음에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어요. 아무리 이국땅이라지만 추석 연휴까지 나와 일해야 했다니…. 보상금 협상할 때 회사 측이 '시신 운구비용과 장례식 비용 5000만원은 보상금에서 제하겠다'고 해서 제가 버럭 화를 냈지요."
재판이 끝난 뒤 정운씨는 살아남은 3남매를 대표해
진수희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앞으로 "동생의 사망 보상금 2억2720만원을 기부하고 싶다"는 편지를 썼다. 복지부는 서씨의 편지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모금회는 "동생을 오래도록 추모하는 길은 동생 이름으로 좋은 일 하는 것"이라는 유족들 뜻을 존중해 숨진 서씨를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유족들은 "동생이 좋은 대학에 간 것도 아니고 크게 출세하거나 부자가 된 것도 아니지만 정직하게 살다가 갔다"면서 "동생처럼 정직하게, 그렇지만 빠듯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동생이 남긴 돈이 쓰였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