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02-20 09:5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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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끊긴 무덤들
● 앵커: 고향에 내려가 성묘들 많이 하실 텐데 성묘하다 보면 잡초에 뒤덮인 묘, 이 잡초는 누구인가 하는 묘지, 많이 보실 줄 압니다.
연고 없이 방치되는 이른바 무연고 묘지 문제를 오늘 집중 취재했습니다. 현용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100년 가까이 된 공동묘지입니다. 어른 키보다 높이 자란 잡풀들.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 덤불을 헤치고 묘지 표식을 찾고서야 무덤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연고자를 찾는다는 안내문과 현수막, 팻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전체 1600여 기의 무덤 가운데 10% 이상이 무연고묘지로 추정되는데 이달 말까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 묘지들은 법에 따라 정리됩니다.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지만 공원묘지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30년 전 개장한 이 공원묘지는 전체 묘지의 30%가 관리비를 낼 후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촉장을 자손들에게 보내보지만 재건축지역이다, 이사를 갔다, 갖가지 사연으로 반송되기 일쑤입니다.
공원묘지 곳곳에는 성묘객들에게 관리비를 내달라고 읍소하는 현수막까지 내걸렸습니다.
● 송귀영 이사: 거주지의 잦은 이동으로 인해서 서로 연락이 안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들은 계약할 때부터 주소지를 다른 데로 옮기면 꼭 저희들한테로 연락을 해 주십시오 하고 당부를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 기자: 묘지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전체 묘지 2100만기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800여 만기가 이 같은 무연고묘지, 즉 자손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무덤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충남 아산시 외곽의 공장부지 3000평. 그러나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여기저기 무덤 연고자를 찾는다는 팻말만 뿌려져 있습니다. 일제 때 묻혀 봉분마저 주저앉은 100여 기의 무덤들은 다음 달 초까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파헤쳐지게 됩니다.
● 김영태: 무연분묘로 취급이 돼서 무연분묘로 개장신고를 마친 다음에 파묘를 해서 화장장에 가서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10년 간...
● 기자: 그러나 묘지의 위치를 기록한 서류조차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무덤을 판 뒤에는 연고자가 찾아와도 조상의 유골을 되찾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법정까지 가는 묘지분쟁도 적지 않습니다. 버려진 무덤인 줄 알고 처분했다가 뒤늦게 후손이 나타난 경우는 다반사이고 아예 무덤인 줄도 모르고 공사를 했다가 소송이 걸린 경우도 있습니다.
● 앵커: 이건 점점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데 현영준 기자, 우리나라는 특히 주민등록제도나 호적제도가 잘 돼있는데도 무연고묘지가 무려 800만기나 된다. 왜 이렇게 묘지관리가 잘 안 되는 거죠?
● 기자: 무엇보다 전산화되지 않았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있겠습니다. 현재 묘지정보를 알려면 손으로 기록한 재래식 묘적부를 봐야 하는데요. 이걸로는 연고자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꾸로 후손들 입장에서 묘적부로는 증조부만 되어도 자기 조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국민정서인데요. 법으로는 묘지의 위치나 연고자 정보를 관청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지만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국민 정서를 고려해 처벌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묘업자들은 개인묘의 90% 가량이 미신고묘지라고 보는데요. 정부도 기록을 알 수 없니 관리 자체가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 앵커: 후손들의 발길이 끊기는 묘지들이 앞으로 점점 늘어날 텐데 이런 버려진 무덤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 기자: 무연고 묘지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와 종합전산망 구축이 필요합니다. 무연고 묘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제주도의 사례와 미국의 묘지종합전산망을 취재했습니다.
제주도는 지난 2002년부터 5년 동안 6000여 기의 무연고 묘지를 정리해 농지와 도로 등으로 활용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버려진 무덤들이 있던 자리지만 1년 전 무덤들을 처분하고 대신 감귤나무를 심었습니다. 무덤에서 나온 유골들은 따로 정리해 공설납골당에 안치했습니다.
● 강인규 계장: 10년 동안 보관해 있다가 그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일정한 장소에 상골처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 기자: 제주도가 이렇게 버려진 무덤을 정리하고 새로 얻은 땅은 8만평에 이릅니다. 버려진 무덤을 정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국적인 묘지관리체계입니다.
미국 51개주의 모든 공동묘지는 전산망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먼저 캘리포니아주를 선택하고 도심형 로스앤젤레스를 클릭하자 공원묘지들이 나타납니다. 망자의 이름이 알파벳순으로 정리되어 있고 검색기능도 갖추고 있습니다. 묻힌 사람의 이름만 알면 관련 기록이 검색돼 무연고묘지는 있을 수 없습니다.
낡고 달아 서고에 처박아둔 재래식묘족부는 이제 버리고 우리도 하루빨리 묘지 관련 전산망을 갖춰야겠습니다.
● 앵커: 현영준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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