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감동을 실현하는 기업 - 디앤아이(주)
   
 
커뮤니티
 
   
 
처음으로
 
   
 
 

  > 커뮤니티 > 추천도서  
 
작성일 : 17-12-11 10:19
균형을 유지하는 법
 글쓴이 : 디엔아이
조회 : 1,185  

질문: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법에 대해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종종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험을 합니다.
지속적으로 중도를 유지하는 건 너무나 어렵습니다.
 

답:
우리의 삶 자체가 극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삶은 상반되는 것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다.
누군가 정확하게 중간에 위치한다면 그가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도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중도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잠시만 가능하다.
줄타기를 상상해 보라. 지속적으로 정확한 중간 지점에 머물 수 있는가?
그렇게 하려고 하면 금방 추락하고 말 것이다.
 
중간에 위치한다는 것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유동적인 현상이다.
[균형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가깝다].
줄타기를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며 중심을 잡는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즉시 다른 쪽으로 움직여서 균형을 유지한다.
물론 왼 쪽에서 오른 쪽으로 움직이는 사이에 아주 잠깐 중간지점에 위치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오른 쪽으로 기울었다 싶으면 즉시 왼 쪽으로 움직이고,
그 순간에 또 아주 잠깐 중간에 위치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균형을 명사가 아닌 동사라고 말하는 의미가 그것이다.
균형이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유동적인 과정이다.
정중앙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른 쪽으로 왼 쪽으로, 왼 쪽에서 오른 쪽으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 균형을 유지하는 단 하나의 길이다.
극단을 피하지 말라.
그리고 하나의 극단에 매달리지도 말라.
다양한 여러 가지 극단에 항상 열려 있어라.
이것이 균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때로는 행복이 밀려오고, 때로는 깊은 슬픔이 찾아올 것이다.
둘 다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마음은 항상 어느 한 쪽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다.
언제나 선택 없는 상태를 유지하라.
어떤 일이 일어나건, 어떤 상황에 있던, 오른 쪽이건 왼 쪽이건, 중앙이건 아니건 간에 그 순간을 전체적으로 즐겨라.
행복이 찾아오면 그 행복을 맘껏 누려라.
춤추고 노래하라.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슬픔이 찾아 올 것이다.
이 슬픔은 필연적인 것이다.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슬픔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행복의 가능성마저 차단하는 짓이다.
밤이 없으면 낮이 존재할 수 없고, 겨울이 없으면 여름이 존재할 수 없다.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
이 양극성을 그대 존재 깊이 받아들여라.
이런 양극성을 피하는 길은 없다.
유일한 길은 점점 더 죽은 사람처럼 굳어지는 것뿐이다.
죽은 사람만이 중앙에 고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어느 순간에는 자비심이 일어나고, 다른 순간에는 분노가 일어난다.
그대는 분노와 자비심 사이를 왕래한다.
두 가지 다 받아들이되 어느 한 쪽과 동일시되지 말라.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되 간격을 유지하라.
몰입하되 집착하지 말라.
살아있는 사람은 매 순간의 감정을 즐기는 동시에 연꽃처럼 존재한다.
연꽃은 물속에 있지만 물에 젖지 않는다.
 
항구적으로 중간지점에 머물려는 노력 자체가 그대를 불필요한 고통에 빠뜨린다.
사실, 중도를 지키려는 욕망 자체가 또 하나의 극단이다.
그것도 최악의 극단이다.
왜냐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괘종시계를 생각해 보라. 추를 중간지점에 묶어 놓으면 시계가 멈추고 만다.
추가 오른 쪽과 왼 쪽을 계속 왕래해야만 시계가 작동한다.
물론 추가 움직이면서 중간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아주 잠시 중앙에 존재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행복감에서 슬픔으로 이동할 때,
그리고 슬픔에서 행복감으로 이동할 때 정확한 중간 지점에 침묵의 상태가 있다. 그 침묵 또한 즐겨라.
 
삶의 모든 면을 받아들여라. 그 모든 것을 살아라.
그래야 삶이 풍요로워진다.
왼 쪽만 고집하는 사람도 가난하고, 오른 쪽만 고집하는 사람도 가난하다.
중간 지점에 고정된 사람은 이미 숨이 끊긴 시체와 같다.
살아있는 사람은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 중도파도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흐른다.
무엇보다도, 왜 중간에 머물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삶의 어두운 면을 두려워한다.
아무도 슬픔과 번뇌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일은 삶의 기쁨마저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소수의 사람들은 그런 길을 선택했다.
금욕수행자들의 길이 그렇다. 그들은 번뇌를 피하기 위해 삶의 기쁨 또한 포기했다.
가시를 피하기 위해 장미꽃 전부를 없애버린 것과 같다.
그런 삶은 무미건조하다. 지겹고 권태롭기만 하다.
고여 있는 물처럼 썪어 간다.
그는 진실로 살아있는 게 아니다.
그런 사람은 삶 자체를 두려워한다.
 
삶은 양쪽 모두를 포괄한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기쁨에 넘친다.
고통과 기쁨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느 한 쪽을 배제하면 다른 한 쪽도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유사 이래 사람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고 있는 점이다.
그대는 고통을 제거하면 기쁨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국에 가려면 지옥을 피해야 하고, 오로지 긍정적인 것만 얻기 위해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큰 착각이다. 사물의 이치상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항상 공존한다.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동일한 에너지의 두 가지 양상이다. 그러므로 둘 다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것도 거부하지 말라. 전체적으로 존재하라.
왼 쪽에 있을 때에는 그 순간을 즐겨라.
그 순간에는 오른 쪽에 없는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중간 지점에는 침묵과 평화가 있다.
이 침묵과 평화는 어떤 극단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을 즐겨라. 계속해서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라.


http://oshokorea.com/bbs/board.php?bo_table=osho_talk&wr_id=14&page=24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