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止動歸止하면 止更彌動하나니 지동귀지 지갱미동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면 그침이 다시 큰 움직임이 되나니
해설:
止動歸止 止更彌動
지동귀지 지갱미동 (다시 갱)
움직임을 멈추어 멈춤으로 돌아가려 하면,
멈춤이 다시 더 큰 움직임이 된다.
부처님 당시에 앙구리 마라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있었다.
그는 당시대에 아주 악독한 살인자로 999개의 손가락으로 염주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원래 이 사람은 아주 착한 영특한 젊은이였다.
스승의 잘못된 인도로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스승이 그에게 사람을 100명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염주를 만들어 목에 걸면
산 상태로 천국에 갈수가 있다고 가르쳤고, 그가 그걸 그대로 믿어버린 것이다.
이 스승은 젊은 부인이 있었는데, 그 부인이 젊은이를 좋아하는 보고 오해로 인해 질투심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앙구리말라는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라에서 이자를 죽이기 위해 천명의 군사를 보낸다는 소문이 들리자
그의 부모는 너무나 놀라서 부처님을 찾아갔다.
자기 아이를 살려주십사고. 영특한 아이를 유학 보내놓았더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들의 간절한 소원을 다 듣고 앙구리밀라를 구하기 위해 그가 있다는 숲속으로 갔다.
모두 도망가는 사람들을 거슬려 올라가다 앙구리말라를 만났다.
앙구리 말라가 외쳤다. “사문아, 게 섰거라.”
그러나 부처님은 평소 걸음걸이로 갔으나 앙굴리마라가 따라잡기 힘들었다.
겨우 힘을 내어 부처님을 가로 질러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는 왜 멈추지 않았는가?”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 하시길, “나는 이미 오래전에 멈추었네, 멈추지 않은 것은 너다.”
“멈춘지 오래되었다고? 너 계속 가지 않았느냐? 왜 거짓말하느냐?”
그러자 부처님께서, “나는 시비 분별심이 모두 멈추었다.
나는 경계 따라 일어나는 모든 분별심이 멈추었다.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짐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너는 아직도 희노애락, 나고 죽음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때 앙굴리마라가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제가 저지른 죄를 어떻게 해야합니까?”
부처님께서는, 그가 무지로부터 깨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저도 출가 수행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그가 마음의 눈을 떳기 때문에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죽을 보므로, 그를 돌로 쳐 죽였다.
그가 돌에 맞아 죽어 간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께서 갔을 때, 아힘사는 그렇게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한점도 후회가 없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고요합니다.’
우리 마음은, 두려워하면서 그걸 억제하려면 잘되지 않는다.
방안에 햇살이 들면, 먼지가 일어나 떠다니는 것이 보인다.
이걸 없애려고 빗자루 질을 하면 먼지가 더 심하게 일어난다.
좌선 중 망상이 일어나고,
망상을 떨치려고 애쓰면 그 한 생각으로 번뇌망상이 더 심해진다.
이렇게 애쓰는 것은 수행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애쓰는 것은 이미 상을 쥐고 있는 것이다.
참을 것이 없는 경지로 가야한다.
망상이 일어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냥 지켜보면 고요해지며,
망상을 떨치려고 한 생각 일으키면 그것이 더한 망상이 되어 번뇌는 치성해진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이미 고요해 있다.
그래서 나는 멈춘지 오래다.
이런 까닭으로 감도 옴도 없다고해서 여래라 부른다.
앙굴리말라는 마음에 오고 감이 있었다,
욕구 즉 하늘나라에 가야지 하는 욕구가 있었기에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오고감이 없어지니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면서도 마음에 원한도 미움도 후회도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고요히 하려고 애를 쓰는데,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이 불안의 원인이다.
불안하면 불안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지켜봐야한다.
‘구하는 게 아니다.’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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