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3-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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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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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혼자 살겠다고 로프를 끊을 수 있어?"
산악소설 '촐라체'낸 박범신
'히말라야의 작가' 박범신(62)이 신작 장편 '촐라체'(푸른숲)를 펴냈다. 히말라야 산맥 남쪽, 해발 6440m의 설산 촐라체에서 조난당한 형제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인 산악소설이다. 지난해 8월부터 5개월간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었다. 조난으로부터 생환하는 모험 드라마의 아슬아슬한 재미가 서사의 씨줄이 됐고,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과 '침묵의 집' 등을 통해 일관되게 실존의 의미를 탐구해 온 작가의 문학 세계가 날줄로 결합했다.
소설 '촐라체'는 산악인 박정헌과 최강식, 두 사람이 2005년 봄 촐라체 등반에서 겪었던 조난과 생환의 실화를 모티브 삼아 쓴 작품이다. 당시 우연히 사고 현장 주변에 있었던 작가는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아갔다. 두 사람이 조난당했던 촐라체 북벽은 빙벽이 1500m 나 가파르게 이어지는 난코스로, 수많은 산악인의 목숨을 빼앗은 곳으로도 악명이 높다.
"촐라체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능선을 지나다가 등반 도중 죽은 산악인들의 추모비를 발견했습니다. 비석들 사이에서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으며 생각했죠. 이들은 왜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는 걸까."
소설 속의 형제는 산 아래 세상에서 늘 반목했다. 서로의 몸을 로프로 연결하면서 동생은 말한다. "우리 서로 약정을 해둡시다. 형이 추락하든 내가 추락하든, 끌어올릴 수 없다고 판단되면 지체 없이 로프를 자른다."
정상을 밟은 뒤 내려오다 동생이 크레바스(crevasse:빙하 표면에 난 균열)로 추락해 발목이 부러지고 형은 갈비뼈를 다친다. 서로를 연결해 주던 로프마저 끊기자 두 사람은 각자 탈출을 시작한다. 형이 혼자 살기 위해 로프를 끊었다고 믿었던 동생은 하산 길에 형을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고 삶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함께 한다.
히말라야 고원 트레킹은 고산병과의 싸움을 요구한다. 작가는 유난히 극심한 고산병 증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산을 고집하는 이유는 몸의 고통이 삶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소설 속 두 형제가 변변한 등반장비 없이 촐라체 북벽을 오른다는 설정도 고통이 정신을 정화한다는 작가의 신념을 반영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사다리를 놔주고 로프를 깔아주며 올라가는 클라이밍이 무슨 등반이냐고 그는 덧붙였다. 되도록 장비에 의존하지 말아야죠.'(35~36쪽)
작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시들어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문명이 잃어버린 생명의 본질적 야성을 깨우쳐 주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은 5000m가 넘는 산도 일반적으로 마운틴(산)이라고 부르지 않고 힐(언덕)이라고 부릅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고통스런 굽이길도 그저 언덕이라고 부르면서 환하게 넘고자 하는 본원적인 낙관주의야 말로 살아있는 것들이 가진 존재의 빛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박범신의 첫 산악소설에 대해 "그의 형이상학은 정신이 아니라 육체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몸은 이 작가를 이야기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라고 분석했다.
박범신과 히말라야
작가는 1990년 히말라야와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네팔 고원지대를 트레킹하며 바라본 히말라야 준봉들에게서 무한한 경외감을 느꼈던 그는 이후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등 히말라야 일대를 열 번이나 다녀왔다. 1993년 절필을 선언했던 그는 이후 3년 만에 돌아올 때까지 특히 산을 찾아 집중적으로 여행을 다녔다.
2005년에는 산악인 엄홍길과 '운우회'라는 동호회도 만들었다. 이번 소설에 소개된 등반 장비나 산악인 세계의 전문 용어에 대한 지식도 그에게서 얻었다. 히말라야 산록을 돌아다니며 얻은 경험과 묵상을 담은 산문집 '비우니 향기롭다''카일라스 가는 길' 등을 통해 대자연의 숭엄함과 그 앞에 선 인간의 실존에 대한 의미를 곱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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